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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11, 밤벚꽃.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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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11, 밤벚꽃.

마노mano 2018. 4. 2. 23:34


* 밤벚꽃이 근사하더라고요, 라고 상대를 상정하듯 써놓고는, 그러고보니 누구를 향해서 쓰고 있었더라? 하는 생각이 잠시. 불특정다수를 향하는 타임라인의 특성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 


* 근사하다, 는 말을 유독 잘 쓰던 사람이 있었다. 늦은 밤 학교 건물을 구경시켜주고 있었는데, '근사하다'며 반쯤은 감탄사처럼 내뱉던 모습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 꽤 예전 일이고, 떠올리고 나서야, 그러고보니, 라고 내뱉고 마는 정도의 기억이긴 하다만, 생각해보면 '근사하다'는 말을 요즘 꽤 자주 쓰고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가장 최근에 쓴 건 아마 '이 근사한 보사노바 팝을'이라는 문장이었지. 


* 뭐하고 사나 궁금해질 때가 있긴 한데, 생각해보면 그 시기가 하필 죄 가을이나 봄 같은 환절기. 사람이 그립다고 누가 생각난다고 무턱대고 연락이 날리고 싶어 근질해지는 바람에 경계령이 떨어지곤 하는 바로 이 시기. 벚꽃도 피고 날도 따뜻해지고, 안 그래도 봄 타는지 툭 하면 울컥하는 시기인데. 위험해 위험해. 당분간은 손가락 꽁꽁 싸매던가 해야지. 하긴 이제 연락처도 모른다만. 이름도 까먹었어. 얼굴은 조금 어렴풋이 기억나긴 한다만.


* 굳이 상대를 상정해야 한다면, 딱 한 사람 생각나는 이가 있긴 한데. 사실 내가 하는 말은 상당수가 그를 향한 것이기는 하다. 대부분의 '빚갚기'는 얼마 전 나름의 송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해냈다 싶긴 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계속 말하는 것이 그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내지 않는 하나의 길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참 이상한 것이, 그는 나의 '최애'도 아니고 '본진'도 아니고, 그저 조금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한 대상이었을 뿐인데. 그러고도 뭔가 내 안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부채감과 이런 저런 것들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모양. 어쨌든, 소중한 존재였음은 사실이고. 


* 명동 씨네라이브러리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오늘 다시 가보니 문헌정보학적 시선으로 봤을 때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더라. 도서관이나 비슷한 역할의 아카이브 공간을 들르면 꼭 청구번호를 확인하곤 하는데, 청구번호가 특이하길래 직원분 붙들고 여쭤보니 (생각해보니 나 때문에 퇴근 늦어지신 건 아닌가 싶은데 갑자기 죄송해짐) 사서 분이 계시긴 계시고, 아예 분류 체계를 새로이 개발한 것이라고. 담당하신 분 계셨으면 아마 내 귀가 시간이고 뭐고 한없이 붙들고 계속 꼬치꼬치 물어볼 뻔했다. 뜻밖의 직업병....


* 마감이 오늘부터 이번 주말까지 줄줄이 사탕인데, 망했다. 그간의 미친듯한 생산력은 어디가고 할 말이 있긴 한데 요만큼도 언어로 갈음하지 못하는 사태 속출. 진짜 망했다. 저지른 건 저지른 거고 일단 자고 일어나서 하나씩 돌려막아 봐야지 뭘 어쩌겠어.


* 몬스타엑스 새 미니앨범이랑, 동방신기 새앨범이 좋은 와중에 특히 '폭우'랑 '평행선'이 각각 너무 좋아서 오늘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폭우'는 올해 '뿜뿜'을 이을 마약송에 등극. 그리고 아이엠이 하는 랩이 완전히 완벽하게 취향이던데, 대체 왜 지금까지 이런 인재를 모르고 있었던 거지....? 진심 어리둥절하고 자괴감 와서 몬스타엑스 여태 활동곡을 죽 훑어보곤 잠정 결론을 내리길 아마 노래랑 썩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음 아니 뭐랄까 그냥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 갑자기 생각나는 시가 있었는데, '달이 근사하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라고 기억하고 있었다가 서칭해보곤 완전히 틀렸음을 깨닫고 대머쓱.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였다.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 그도 좋아하는 시인이, 시가 있었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산수유 꽃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그가 좋아했던 꽃이 궁금해진 것처럼.


* 그래서 말인데, 밤벚꽃이 근사하더라고요. 달도 탐스럽고, 바람도 시원하고 달아요. 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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