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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종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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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종언,

마노mano 2018. 6. 15. 23:33


K의 소식을 뒤늦게 듣게 되었다.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소식.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이 그의 1주기라는 것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까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으나, 놀라지 않았다고 하면 그 역시 거짓말.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긴 했으나, 그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뜻인 것은 결코 아니기에.


한 젊은 락커의 때이른 죽음. 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그가 나와 동갑이어서, 한때 일상의 많은 부분을 함께 보낸 이여서, 전심전력으로 응원했던 존재여서.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마치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청춘의 종언'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웃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러했다. 


애초에 '청춘'의 정의부터가 애매하긴 하다. 어느 시기,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인생의 어느 부분을 청춘이라 불러야 하는지 아무도 속시원히 답해주지 않는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청춘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 많고도 많지만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청춘을 살고 있는 이조차 청춘을 망령처럼 좇아다니고, 대부분은 뒤안길에서 청춘을 두고두고 그리워하곤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직 청춘이라며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 어떤 것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청춘은 그러한 것이니까. 


내 나이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 청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조차도 스스로의 나이나 청춘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그 누가 감히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K의 부재로 인해 스스로의 청춘에 마침표가 찍혔음을 절감한다. 그는 나의 연인도 절친도 동료도 무엇도 아니었지만, 가장 빛나던 시기의 한 조각을 차지한 존재임은 확실하기에. 그 조각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고, 그런 고로 나의 청춘 역시 종막을 고했다. 나는 그리 느낀다. 


김광석은 일찍이 노래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며. 내 청춘 역시 언제까지고 그럴 줄 알았지만, 사실은 조금씩 청춘의 조각들과 하루 하루 이별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임을. 그것들을 모두 잃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임을. 한 조각을 나는 너무도 빨리 잃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K가 살아있었다면 그도 올해 서른 셋이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서른 셋이었다. 


K의 동료였던 L과 무척이나 친했다. 나보다 조금 연상이었던 그는 나를 친여동생처럼 진심으로 귀여워해줬다. 간혹 주위에 다소 폭력적인 언사를 보이는 일도 있었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그 다정함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막차가 끊겨서, 하루는 L이 타고 다니던 스쿠터에 신세를 졌던 적이 있었다. 그의 허리를 양 팔로 꼭 감싸안고, 마치 온 세상이 조그마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찔한 속도감 속에서, 나는 그것이 내 청춘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것이라 직감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질주감 속에서 사는 일은 아마 앞으로 없을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맞아 떨어졌다. 그 이후의 일상이란, 쳇바퀴를 도는 듯한 무료 아니면 무기력한 무위 둘 중 하나였으니. 그러한 시기를 지나 지금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조금은 철없던 그때와 같은 속도는 다시 낼 수 없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겁이 많아져 버렸으므로. 


그들이 무대에 서있는 순간을 너무도 사랑했다. 각자 빚어내는 소리가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울림이 되는 순간의 짜릿함이 너무도 좋았다. 그들의 순간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을 마시고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고 웃고 떠드는 모든 순간을 좋아했다. 어느 해였더라, 12월 31일에서 신년으로 넘어가는 날에도 공연이 있었고, 나는 야심차게 케이크를 만들어 갔었다. 입에 들어간 것보다 서로에게 던진 양이 더 많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던 순간 중 하나였다. 마치 눈싸움을 하듯 케이크 조각을 서로에게 집어 던지며 우리는 유치원생들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풍경 속에 있는 모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행복을 느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런 추억을 공유한 이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내 청춘의 일부를 함께한 이를 다시는 볼 수 없다. 어처구니 없고 슬프고 황망하다. 초라한 모습은 보이기 싫다며 내가 먼저 피해다닌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서도,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영영 다시는 볼 수 없는 이가 되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이지. 


작년 6월, 나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더라.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상당 부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 댓가를 이제서야 치르는 것일까.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어떠한 존재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의 부재에 대해 도저히 무심해질 수가 없다. 그는 내 청춘의 일부였고, 내 인생 가장 반짝이던 시절의 한 조각을 가져간 사람이니까. 그런 그에게 마지막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이렇게 참담할 수가 없다. 


뒤늦게, 그가 잠들어있는 곳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했다. 어제가 그의 1주기였으니 벌써 찾아갔어야 마땅하지만, 일정상 그러지 못했으므로 근시일내에 어떻게든. 그가 이 세상에서 쉽사리 잊혀지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내 청춘의 일부로서 내 일상을 반짝이게 해주었던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 생각하므로. 


어제는 0시가 지나자마자 나름의 추모로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곡들을 들었다. 일부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데모 파일들. 그것들이 언젠가는 빛을 보는 날을 몇 번이고 상상했었다. 이 곡은 소년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 주제가였으면 좋겠는데, 이 곡은 락페스티벌에서 다같이 뛰어놀면 재미있을 거 같아, 여기서는 다같이 해드뱅잉하고 슬램해야지, 같은 꿈같은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그것이 영영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풍경 속에 그는 더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하늘에서는 지켜봐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가 이제는 편안하게 쉬고 있기를 바란다. 내 청춘의 조각, 영영 잃고 만 나의 조각. 이제는 괴로움 없는 곳에서 편안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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