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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으로 환생한 지젤: 오마이걸 <Closer>와 발레극 <지젤>의 평행이론 by 마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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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으로 환생한 지젤: 오마이걸 <Closer>와 발레극 <지젤>의 평행이론 by 마노

마노mano 2016. 9. 23. 15:25


일개 덕후인 제가 좋은 기회를 얻어 <아이돌로지>에 졸고를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나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생각 외로 일찍 이루게 되어 감개무량....

평소에 오마이걸의 <Closer>에 대해 이것저것 혼자서 망상하고 궁예하던 것을, 단독 콘서트 갔다 와서 번뜩 영감을 얻어 일사천리로 글을 완성하고 첨부할 자료 모으고 가사 분석하고 탈고하는 과정 모두가 참 즐거웠습니다. 논문도 이렇게 즐거우면 정말 좋을텐데

항상 글을 써서 보낼 생각은 하고 있었고 실은 끄적댄 것이 몇가지 있었는데, 어째 맨날 결론에서 용두사미 흐지부지 되어서 결국 흙오이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이렇게 수월하게 완성도 하고....(셀프 쓰담쓰담)


엄, 사설이 좀 많이 길었네요. 

이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는 아이돌로지에 게재된 최종 편집본과 약간 다른, 편집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이 모두 포함된 이를테면 디렉터스 컷.....아니 에디터스 컷(?) 같은 것입니다. 비공개로 남겨놓기엔 왠지 아쉬워서, 개인적인 공간에 이렇게라도 공개하여 셀프 만족을 시전해 보는 바....

저의 개인적인 사견이 아주 담뿍 끼얹어져 있으니, 궁예는 궁예일 뿐 오해하지 말자(...)의 마인드로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

더불어, 전지적 발레알못의 시점에서 최선을 다해 쓰여진 글이므로, 관련 부분에 대한 발레잘알 여러분의 아낌없는 코멘트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돌로지에 공개된 졸고를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이쪽으로.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 (기껏 이런 졸고지만 그래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도리일것 같아서....)

늦은 시간에 연락해 자꾸 귀찮게 해도 전부 받아주시고 성심껏 편집 방향 등 이것저것 아낌없는 조언 해주신 미묘 편집장님께 무한한 감사를. 

또한 저의 개인적인 궁예에 여러가지 의견과 시각을 제시하여 큰 도움 주신 김누누님도 감사드립니다. 

단콘 티켓 구해주신 저의 은인 모 님....님이 저를 살리셨습니다....티켓팅 성공하지 않았다면 이 글 없었을것....

그리고 단콘의 꿈을 이루고 점점 더 높은 곳으로 향해가는 소녀들아 사랑해! ㅠ_ㅠ


그럼 즐겨주세요 :)





걸그룹으로 환생한 지젤: 오마이걸 <Closer>와 발레극 <지젤>의 평행이론*

by 마노


* 아이돌로지에는 "오마이걸의 ‘Closer’ – 걸그룹으로 환생한 지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2016820, 오마이걸의 첫 단독 콘서트 <여름동화>에 참전했다. 필자는 티켓팅에 장렬히 참패했지만, 다행히 동행인이 2층 정중앙이라는 좋은 좌석을 그것도 연석으로 구해주어서, 단 하루지만 소녀들의 첫 단독 콘서트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슴이 뛰기 충분했다.

 

시간에 맞춰 좌석에 착석했고, 정해진 시각이 되자 오프닝 VCR이 흘러나왔다. 막이 걷히고 모두가 흥분하기 시작한 찰나, 필자 역시 흥분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흘러나오던 익숙한 전주가 다름 아닌 필자의 최애곡<Closer(2015)>였고, 그 다음 순간 등장한 멤버들이 새하얀, 말 그대로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나와 노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진: WM엔터테인먼트 공식 블로그


흔한 말로 천사가 내려온 듯한 아름다운 비주얼에 감격했던 것도 있지만, 내심 소름이 돋았던 이유는, 최근 <Closer>를 듣고 보면서 해온 여러 가지 궁예들이 모두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개인 SNS 계정을 통해, <Closer>와 발레극 <지젤>의 상관 및 평행이론을 여러 번 주장한 바 있었고, 그저 말도 안 되는 혼자만의 궁예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과장 조금 보태어 말하면 마치 오피셜(공식 설정)’이라도 되는 양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소오~름(?)"


그렇다면 오마이걸의 두 번째 미니 앨범 타이틀곡 <Closer>,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격인 발레극 <지젤>의 평행 이론에 관해, 가사와 의상, 안무 등에서 보이는 공통된 모티브를 살펴보며 한 번 우겨보기로 한다.

 

국내에서도 여러 번 무대에 오른바 있는 <지젤>은 이른바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격으로, 주인공 ‘지젤’을 연기하는 발레리나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중요시 되어 많은 무용수들이 선망하는 발레극이다. 발레를 소재로 그린 만화 <스바루>나, 전직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의 2010-2011년도 시즌 쇼트 프로그램 곡으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스탠더드이기도 하다. 대략적인 시놉시스 및 해설에 관해서는 위키피디아가 잘 소개하고 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오마이걸의 데뷔작 <CUPID(2015)>의 떠들썩하고 들뜬 분위기나 가사가,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마을 사람처럼 지내는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 지젤이 마을 사람들까지 한데 어울려 춤추고 즐거워하는 1막과 유사하다면, 알브레히트가 사실 귀족이었으며 높은 신분의 약혼녀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지젤이 크게 충격을 받고 상심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이후의 2막은  <Closer>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안개가 깔린 듯한 신비롭고 차가운 분위기도 그렇고 (실제로 오마이걸은 해당 무대에서 드라이아이스를 활용하는 연출을 자주 선보인 바 있다), 가사 곳곳에서도 <지젤>의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다. 실제 <Closer>의 가사를 하나씩 짚어보자.

 


참 멀리 있나 봐/매일 다가가도 아득하기만 해

별똥별아 안녕/내 소원 들어주렴

 

한 걸음 closer 내 맘/한 뼘 closer to you

하늘을 스치는 별에/내 맘을 담아 보낼게

 

(…)

 

언제나 함께였던 공간에서

쓸쓸하게 빛나고 있는 넌

많은 별자리 중/널 닮은 자리를

저 하늘 위에 고이 담아 비춰주기를 바래

널 그리기 위한 꿈을 그리다

그리고 그리면 만날 수 있을까

 

화자인 ‘나’는 대체 어째서 그리도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가. 왜 그리도 ‘너’에게 가까이(closer) 다가가고 싶어하는가. “널 그리기 위한 꿈을 그리”면서, “그리고 그리면 만날 수 있을까”라며, 아픈 가슴으로 상대방을 그리고 그리는 것일까. ‘나’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힌트를 다음 가사에서 얻을 수 있다.

 


(…)

날 비추는 달님 (들어봐)/간직했던 나의 비밀

(…)

Can you hear my cry

어느 늦은 밤/긴 꿈을 꾸는 나

 

한 걸음 closer 내 맘/한 뼘 closer to you

태양이 지우기 전에/너에게 닿길 기도해


달님이 를 비춘다. 태양이 를 지운다. 그 전에 에게 닿지 않으면, 영영 다가갈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에게 닿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는 길고 긴 꿈을 꾼다. 달님이 비추는 동안은 존재하고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사라져야만 하는 ’. 그리고 가 꾸는 긴 꿈.

 

그렇다. ‘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영원히 구천을 떠돌며 의 주위를 맴돌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달빛이 어스름 비추기 시작하면 나타나서,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이다. ‘가 꾸는 긴 꿈, 인간의 영원한 잠, ‘죽음인 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 구천을 떠돌다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유령들. <지젤>에 등장하는 처녀 유령 윌리(Wili)’들이다. 전생에 춤을 몹시도 좋아한 처녀들이 결혼 전에 삶을 일찍 마감하여 구천을 떠돌다, 지나가던 행인을 유혹하여 함께 춤추다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 윌리들, 그리고 알브레히트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잊지 못한 채 윌리가 된 지젤이 오마이걸의 <Closer>에서 환생했다고나 할까. 지나가는 행인을 ‘사냥하는’ 한 많은 유령으로 비춰지는 윌리들의, 원작에서 채 다뤄지지 않은 숨겨진 뒷이야기와 속마음을 그들의 시점에서 재해석했다고 하면 조금 과한 궁예일지.

 

 


포메이션 변화의 다채로움과, '백색발레'의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직캠. 

<Closer> 무대만 감상하기를 원한다면 0:16~3:55 구간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금 오마이걸의 무대를 보면 많은 것이 달라 보인다. 우선 뮤직비디오와 공식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입었던 의상은 다름 아닌 새하얀 투피스이며, 스커트는 플레어 라인으로 빳빳하고 풍성한 디자인이 발레 의상인 튀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거기에 콘서트에서는 멤버 별로 조금씩 다른 디자인의 하얀 원피스 안에 패티코트를 덧대어 한결 풍성하게 연출한 것이 정말로 로맨틱 튀튀(<지젤>에서 윌리들이 입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기장의 튀튀) 같아 보이기도 했고, 거기에 일부 멤버는 머리에 깃털 장식을 달기도 했다.


 

Photo by Alceu Bett / Rosalie O'Connor / MNET AMERICA Official Tumblr



센터인 유아를 제외하고 모두가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유아를 포함한 모두가 같은 포즈로 끝나는 수미쌍관식 안무는 ‘달이 뜨면 나타났다가 태양이 뜨면 사라지는’ 윌리들을 연상하게 한다(심지어 뮤직비디오에서는 페이드아웃 되며 모두가 ‘사라진다(!)). 억지 하나 더 보태자면하반신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웨이브를 극도로 절제한 대신 자잘한 손동작이나 골반의 움직임을 강조한 안무도 묘하게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어 신비로운 분위기에 힘을 더한다. 따지고 보면 19세기 낭만주의 발레, ‘백색발레(Ballet Blanc)에서 추구하는 ‘신비감을 주기 위한’ 요소들이 전부 들어가 있는 셈이다. 어스름한 달빛이 비추는 공간, 새하얀 의상을 입고,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공기의 요정처럼 가볍게 나풀대며 춤추는 소녀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는 공교롭게도 케이팝 칼럼니스트 Jacob Dorof오마이걸 프로덕션팀과 인터뷰한 내용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데, 키 아티스트 에이전시(Key Artist Agency) 대표이며 WM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하고 있는 최재혁 대표는 “신비롭기를(Mysterious) 원했으나, 호러 장르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며 <Closer>에 기대한 이미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차갑고 신비롭지만, 음산하거나 기괴하지는 않은, 이를테면 ‘스산한 우아함’을 추구했다고나 할까.

 

영영 이룰 수 없게 된 사랑을 그리며, 그 그리움을 땅바닥에 별자리를 그리는 춤을 추는 것으로 달래는,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늘을 스치는 별님에게 마음을 담아 그 사람에게 보내는 것 밖에 없는 가련한 윌리들, 혹은 지젤들은, 가사에서도, 표정으로도, 직설적으로 ‘슬픔’이나 ‘절망’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그저, 서늘하고 건조한 표정으로, 마치 공기가 떠다니듯 가볍고 우아하게 춤을 추며,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로 표현할 뿐이다.



 

참고자료

 

한국 위키피디아, "지젤"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C%A0%A4)

예술의 전당 공식 홈페이지, “발레 용어” (http://www.sac.or.kr/lab2001/swan/ballet_2.html)

Jacob Dorof, "007. OH MY GIRL // CLOSER." K-Pendium (http://www.k-pendium.com/007/)

 



필자주: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원작 설정상 빌리(Wili)’가 올바른 표기이나, ‘윌리라는 표기로 널리 알려진 만큼 편의상 윌리로 표기를 통일하기로 한다.

 




마노

영원한 19. 선천적 덕후. 목표는 지속 가능한 덕질. 글 쓰고 글씨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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