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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 <스타트렉: 비욘드>로 아버지를 추억하다

마노mano 2016. 8. 31. 21:04


<스타트렉: 비욘드>를 n차 찍다 보니, 자꾸 생각이 나서 쓰는 별도의 포스트. 


아버지가 안 계신지 사실 좀 됐다. 음, 그러니까 그게 2007년이었나. 사실 아주 가까운 지인 아니면 밝히지 않으려 조심해왔는데, 내 인생의 흠도 아니고 딱히 숨겨야할 이유를 이젠 모르겠어서. 암튼 2007년 이맘때 즈음 정말 갑자기 떠나셨고, 잘은 모르지만 아마 과로 탓이었겠거니 하고 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셨다. 속된 말로는 '공돌이(본인 스스로 자조를 겸해서 자주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다)'셨다. 그리고 아마 공대 입학과, S전자 입사와, 반도체학과 교수 임용의 배경에는 트렉이 있었으리라 나는 그저 짐작한다. 이젠 곁에 계시지 않으니 직접 확인할 길은 영영 없다. 그저 나의 지레짐작일 뿐.


트렉을 보며 자란 많은 이들이 엔지니어를 꿈꾸었고, 상당수의 기술을 현실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의 넘겨짚기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사실일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주 어릴 적 집에 The Original Series (The Next Generation 이었을 수도 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음) 의 VHS 전권이 있었던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데다, 역시 이제는 작고하시고 안 계신 레너드 니모이 옹을 어린 마음에 '뾰족귀 아저씨'로 알고 있던 기억의 편린 때문이다. 모든 장르의 영화와,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학문과, 음악부터 종교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던 '덕후'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트렉이 당신의 꿈과 목표에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 역시 지레짐작으로 넘겨짚고 있다.


농담 섞어서, 보여 주실거면 <스타워즈> 트릴로지 말고도 트렉 시리즈 중 아무거나 하나 쯤은 보여주셨어야죠 아부지 라고 드립삼아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는데, 사실 진심으로 아쉽다. 우리 어머니의 그것 만큼,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는 정작 심할 정도로 무지했음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삶이야 지금이라도 기회만 되면 물어볼 수 있고, 실제로 얼마전 1박 2일 여행지에서 와인잔 기울이며 했던 많은 이야기를 통해 엄마의 삶을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럴 기회따위 이제 영영 없음을 이제서야 아쉬워한다.


얼마 전이 기제사였다. 생전에 밝히신 뜻에 따라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그 이후로 1년에 한 번씩 절에서 기제사를 드리는데, 조금만 더 일찍 봤다면 (개봉일이 개봉일이라 아마 불가능했겠지만) 기제사 지내는 동안 말 그대로 잿밥 생각만 하는 불경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웃음)


인생에 'What if'라는 건 없다. 그렇지만, 만약에 아직도 아버지가 계셨다면, 그래서 손 잡고 극장에도 다녀오고, 하는 김에 과거 극장판을 같이 정주행하고, 트렉의 메세지와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그럴 수 있었다면. 


아버지의 부재를 아쉬워한 기억은 사실 별로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건지, 부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게 되어버린 건지, 양 쪽 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인생의 길목 길목, 아버지의 지혜와 식견을 구하고 싶었던 순간은 있었지만, 'what if'를 생각한 적은 아마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못난 딸내미는 이제서야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한다. 


리부트 세계관에서 커크는 태어난 날 아버지를 잃는다. 평행세계(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의 나에게, 아버지는 존재할까. 아니면 커크처럼 태어나면서 동시에 잃을 운명일까. 어쨌거나 확실한 건 내 생각보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내 안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며, 길고도 짧은 부재의 기간동안 미처 깨닫지 못 했음을 이제 와서 실감한다는 것이다.


곧 추석이다. 성묘하러 가서, 빈소에 술 한 잔 놓으며, 마음 속으로나마 말을 걸어보려 한다. 


아버지의 삶은, 어땠느냐고. 



횡설수설했다.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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