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o, the bewitched

아무말 #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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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19,

마노mano 2018. 10. 9. 00:57


* 지금이 10월인데 마지막 업데이트가 어언 두 달 전이었다니 심각하다. 퍼스트리슨 묶음 발행도 몇 달치나 밀렸고. 대책이 없다 증말.


* 마감은 언제나 그렇듯이 밀려있고, 이번에도 환절기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어김없이 감기를 얻는 바람에 그 핑계로 약 먹고 드러누웠더니 할 일이 사정없이 덮쳐와서 후회가 막심한 상태. 마감도 마감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꾸준히 했어야 할 자잘한 일들이 마구 밀려있고 갑자기 다른 일거리가 끼어들고 하는 식. 내일이 공휴일인 게 다행이지. 


* 드디어! 실직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만 출근하면 되는 일이고, 첫 날은 뇌가 저릴 정도로 정신 없고 힘들었는데 익숙해지니 꽤 할만 하다. 심지어 출퇴근 시간도 유동적. 업무 내용상 영어 공부도 된다(애초에 영어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 좋은데, 꽤 먼 곳에 있어서 교통편이 만만치가 않다. 하필 예전에 살았던 동네라서, 전에 살던 집에서였다면 도보 출근권인데 하며 세상 억울. 출근길은 그나마 괜찮은데, 퇴근길이 (특히 러시아워 시간대에는) 정말 세상 고역스럽다. 어쩌겠어, 남들은 더한 것도 하는데 이거 가지고 죽는 소리하면 너무 양심이 없잖어.  


* 이소라의 신곡이 나왔다길래 밤산책송 삼아 듣다가 예상치 못하게 한 대 얻어 맞아버렸다. '아마 이맘때쯤인 것도 같은데/시원한 바람이 우릴 스쳐갔고/우린 처음 만났지'라는 도입부 가사부터 완전 뼈 맞은 듯 얻어 맞았는데, 안 그래도 가을이라 마음이 영 싱숭생숭한 와중에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기억을 들쑤셔대니 진짜 얄궂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작사 누가 했는가 찾아보니 정지찬과 이소라. 나쁜 사람들. 이건 반칙이잖아요.


* 하는 김에 발라드만 골라서 주욱 들으며 걷는데, 한 몇 년은 떠올리지 않았을 온갖 기억이 떠올라서. 지난 주말에 태풍 때문에 불꽃축제가 열리네 마네 했던데, 막상 그땐 아무 생각 없다가 갑자기 생각해보니 같이 불꽃축제 갔던 게 느닷없이 생각이 나더라. 결국 불꽃 구경은 뒷전이고, 서로 좋아하는 거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퇴근 후에 갑자기 불려나간 한강공원이라던가, 차 안에서 내내 손 꼭 잡고 들었던 음악이라던가, 아무튼 기억 나는 게 다 그런 사소한 것들. 그래, 우리의 시작도 마침 10월이었지. 


* 이런 말 하면 내가 정말 나쁜 사람 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젠 이름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그 가수랑 받침 하나 차이였으니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아니긴 하네.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이렇게라도 기억하지 않으면 그나마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인 건 맞다. 마지막도 그리 좋았다고 할 수 없는 결말이었고. 결국은 자기도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던 거면서, '너는 나를 내가 했던 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니. 치사하기 짝이 없다 정말. 누구한테 책임 전가야 대체. 그런데 그 말이 과히 틀린 것은 아니었던 것이, 이름도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결국 나한테 딱 그 정도의 존재였던 것이다. 5년 간 짝사랑했던 선배의 이름은 잘도 기억하면서.


* 그 당시의 추억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좋았던 건 사실이니까. 당시의 감정에는 한 치 거짓도 없었으니까. 이건 정말 맹세할 수 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결국은 나를 자신의 인생을 완성할 수단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던 주제에, 마지막까지 실컷 나에게 온갖 책임만 전가하고 떠났다는 점이다. 나한테도 결국 그 정도 존재였지만, 그에게 있어 나 역시 고작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이러쿵 저러쿵 자기 변명은.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자기는 좋은 사람인 척 하고. 아니,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으니 나쁜 사람인 게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서도.


* 환절기라는 계절이 이렇다. 매년 이 시기를 곱게 보낸 기억이 손에 꼽는다. 그래도 예전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일 년을 지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 들어 환절기 별로 연 2회는 꼭 감기를 달고 사는 걸 보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야속한 세월 같으니. 엉엉.


* 아 너무 셀털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제가 지금 술을 마시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까 산책할 때 구상했던 건 분명 이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내일 아침에 확인하고 이불 차면서 글 지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술 좀 그만 마셔야지. 내일은 반드시 마감도 쳐야 하고 밤에는 댄스 레슨도 받으러 가야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녁에는 맛있는 훠궈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주말 내내 앓았는데 드디어 먹는다. 너무 신나.




암튼 곱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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