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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마노mano 2018. 6. 13. 05:29




무어라 운을 떼야할지 모르겠어서, 깜박이는 커서를 꽤나 오래도록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잘 지내? 라는 말이 먼저여야 마땅하겠지만, 너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 그 말도 부질 없는 것일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을 수 없겠지. 잘 지내? 너무 오랜만에 안부를 묻게 되네. 


소식은 가끔 듣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만난 게 대체 언제였는지. 공연을 하고, 끝나면 다 같이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고, 그런 것이 일상이었던 나날이 있었는데. 지겹고 지겹도록 얼굴을 마주했었는데. 어느샌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멀어지게 되었고(각자의 생활이 바빴던 탓도 있고, 솔직히 말해 내가 먼저 멀리하려고 했던 것도 있었어. 우습지만, 초라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거든), 그러는 동안 정식으로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어. 솔직히 말하지만,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 내가 너무도 사랑하던 그 곡은 내가 알던 그 곡이 아니더라. 변화는 필요한 것이고 아마 너희들도 어느 정도는 타협한 부분이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그리고 너희들 성격상 아마 꽤나 오랜 진통 후에 결정된 것이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야.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변함없이 너희들을 응원하고 있었어. 드디어, 드디어 빛을 보게 되는구나. 이제 정말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겠구나.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그것이 네 마지막 앨범이 되었으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미안해. 너무도 뒤늦게 소식을 들었어. 그리고 방금 전에 겨우, 네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참이야. 공교롭게도 날짜가 내일이더라. 바보. 도대체 왜 그랬어. 


네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 멀대 같이 키는 크지, 찢어진 눈매에 차갑게 생겼지, 하는 말도 그다지 살갑지 못하고. 그러나 정작 말을 나눠보면 의외로 말랑한 부분도 있고, 웃으면 누구보다 순박한 인상을 보이곤 해서, 그것이 꽤나 의외였다고 기억하고 있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 것을, 좀 더 친해졌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좀 더 너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래도 네가 싫진 않았어. 나는 너희들과 사랑에 빠져 있었으니까. 전심전력으로 너희들의 행복을 바랐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너희들을 도왔고, 너희들이 너무도 좋았으니까. 너희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을 사랑했고, 무대 위에서 달려가는 모습을 사랑했고,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을 사랑했어. 공유해준 데모 파일은 지금도 가끔 들어봐. 아직도. 너무 좋아하거든. 


더 듣고 싶었어. 너희들이 빚어내는 소리를.

그것들이 언젠가는 빛을 보길 진심으로 바랐어. 나만 혼자 아껴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듣게 되기를.

이제는 그것도 부질없는 소원일 뿐일까. 


너는 대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었을까. 겉으로는 그렇게 퉁명스러운 척을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던 걸까. 이제는 알 길이 없겠지. 그런 것들을 물을 정도로 우리는 그리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진작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야. 내가 이런데, 네 주위 사람들은 더하겠지. 네 페이스북을 보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너를 그리워하고 있더라. 그런 사람이야, 너는. 알고 있어? 


조만간 혼자라도 네가 잠든 곳을 찾아가볼까 해. 장례식에도 미처 참석하지 못했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싶어서. 그래,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부재에 대해 무심해질 수가 없네. 마음이 아파, 솔직히. 미처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너의 부재를 뒤늦게 알아차린 것도.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네가 듣고 싶어했던 말은 뭐였을까. 듣고 싶어했던 음악은 뭐였을까. 먹고 싶어했던 것은 뭐였을까. 혹은, 그런 것이 없었기에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만 것일까. 생각해보니 나는 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네. 점점 더 미안해져서 어쩌면 좋을까.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으니, 좋아하던 술을 가지고 너를 찾아갈게. 그래, 다른 건 모르겠어도 술을 좋아했던 건 확실히 기억나. 엄청 세기도 했고. 나는 벌써 헤롱거리는데, 너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던 것이 기억나. 


그 곳에서는 부디 편안하기를. 

보고 싶을 거야, 자식. 잘 지내고 있어. 나도 언젠가는 찾아갈 테니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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