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으로 합류하기 시작한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까지 약 한 달 분량의 1st Listen 단평을 모아보았습니다.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아마 없을 것 같군요, 아카이빙 목적을 겸해서 앞으로도 한 달씩 묶어서 올려볼까 합니다. 사실 블로그 업데이트 하고는 싶은데 글 올릴 게 없어서 이러는 거 맞아요....
TMI로 결산을 내보자면,
2월 : 8팀
3월 : 32팀 (....)
이렇게 리뷰를 했습니다. 이 시기에 유독 발매작이 많았는데, 제 리뷰도 만만찮게 많군요....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이 생산력 흑흑.... 갔어 오지않아
곧바로 이어지는 타이틀곡과 마치 한 곡인 마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인트로 트랙 ‘Lucky’로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나면, 당차고 생기발랄한 기운으로 가득한 ‘La La La’가 청자를 반긴다. 마치 클럽에서 시끌벅적 한바탕 놀고 난 후에 가볍게 리듬을 타며 쿨다운 하는 듯한 무드의 수록곡도 그 면면이 매우 준수하다. 전작의 트랙리스트가 앨범 아트워크만큼이나 컬러풀하고 다채로웠다면, 이번에는 가운데는 모노톤이지만 배경은 쨍한 빨강으로 마감한 앨범아트처럼 음악도 강렬하지만 절제되었다고 할까. 상대적으로 차분하지만 축 처지지는 않는 디스코풍의 ‘Iron Boy’, 묵직하게 터지는 하우스 리듬이 매력적인 ‘Metronome’, 산뜻한 마무리감을 전하는 ‘Color Me’까지. 단지, 아무리 발매일 기준으로 한창 개최 중이었다고는 해도 평창 동계 올림픽 폐막을 불과 사흘 앞두고 굳이 ‘Butterfly’를 마지막 트랙으로 넣어야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아예 선공개 곡이 아니라 단발 이벤트성 싱글로 별도 발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는 EP. 앞으로도 당당하고 당차게 달려나갈 위키미키의 미래를 응원한다.
필진 합류하고 처음으로 리뷰한 앨범이었습니다. 워낙 좋은 음반이었던 덕에 좋은 탄력을 받고 지금까지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단독 리뷰에서는 위키미키가 제시하는 '새로운 소녀상'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했습니다. 다양한 소녀, 다양한 여성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Metronome'은 아직도 저의 '자존감 높여주는 플레이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트랙.
CLC <Black Dress>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8년 2월 22일
난폭하리만치 쏟아지는 힙합 비트 위를, 검은 킬힐과 검은 수트로 무장한 CLC가 거침없이 내달린다. 마치 ‘너’를 위해 차려입은 검은 드레스는 유혹을 위한 전투복이라는 듯. 랜디의 말대로‘아, 이번에야말로...?’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반갑게까지 느껴지는 과감한 변신. 하지만 아쉽게도 앨범 수록곡이 간만의 기세를 이어가지는 못 하고 있다. 다소 힘 빠지는 수록곡들 사이에서 그나마 ‘To the sky’가 눈에 띄는데, 라이브 현장에서 다 함께 방방 뛰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괜찮은 방향 전환이기는 하지만 아직껏 팀 컬러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위기일지도 모르겠다.
새나 <러브미>
그림 엔터테인먼트, Trinity Ent.
2018년 2월 23일
‘걸그룹 데뷔조 멤버’(보도자료에서 이렇게 칭한다) 새나의, 일종의 프리데뷔 싱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컬 톤이나 음색이 무척이나 풋풋하고 싱그러운데, 가창력이 폭발적이거나 원숙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곡과 썩 어울린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조금은 앳된 보컬이 봄바람처럼 살랑이는 멜로디 위에서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가운데, 쟁글대는 일렉 기타와 낮게 퉁기는 베이스가 산뜻하면서도 마냥 가볍지는 않게 곡을 받쳐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어느덧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 봄을 실감하게 하는, 큰 ‘한 방’은 없지만 꽤나 듣기 편한 트랙.
트랙스, Lip2Shot <Notorious> (SM STATION)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2월 23일
아, 이것을 두고 진정 혼돈의 카오스라고 하는가 보다. 들으면서 내내 ‘제발 하나만 해, 하나만!’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도입부에서는 드디어 초창기의 ‘다크다크’한 트랙스로 돌아오려나 싶어서 내심 기대하게 하다가, 이후로는 퓨처 EDM식 빌드업과 랩, 힙합 리듬, 막판에 갑자기 훅 치고 올라오는 기타 리프가 마구 뒤섞여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진다. 요소들이야 그렇다 쳐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것들이 전혀 조화롭지 않으며 각각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속 아티스트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것이 SM 스테이션의 의의라고 하지만, 이건 좀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아무 음악 대잔치’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 기획을 굳이 꼭 이어갈 필요가 있는지 시즌을 넘어갈수록 의구심만 점점 더 깊어진다. SM 스테이션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그나마 영어 버전이 조금 더 듣기 편한 것은 무슨 연유인지.
성규 <10 Stories>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8년 2월 26일
서늘하게 가라앉은 공기를 품은 록 사운드와, 김성규의 카랑카랑하게 일직선으로 울려 퍼지는 보컬은 여전히 잘 어울린다. 트랙 각각의 퀄리티도 좋다. 김성규의 곡 수행력 역시 탁월하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이 앨범이 김성규의 것인지 김종완의 것인지 헷갈린다는 점. 아무리 전곡을 한 사람이 작곡했다고 해도, 연차도 디스코그래피도 꽤 쌓인 솔로 아티스트만의 고유한 색깔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치명적이지 않나 싶다. 단점이라곤 그것 하나뿐이어서 더더욱 안타깝다. 수록곡 중 ‘머물러줘’와 ‘끌림’이 귓가에 오래도록 머문다.
사실 태생이 락키드인지라 도저히 싫어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치명적인 단점이었기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어 안타깝기까지 했던 앨범입니다. 링크 걸어놓은 '머물러줘'는 지금까지도 밤산책길에 자주 듣는 곡이에요. 조그만 빛 입자가 나풀대며 떠다니는 느낌이 좋아요.
Various Artists (김보형, 하이틴, 김용진, Arkay) <Music Is for All>
A.I.M, Enterarts
2018년 2월 27일
이제는 인공지능이 작곡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확히는, 인간이 곡의 길이, 장르 등의 디테일을 지정해주면 그 안에서 인공지능이 음을 만들고 작편곡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영국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Jukedeck과 한국의 엔터아츠가 협업하여 런칭한 AI 음악 레이블 A.I.M에서 발매하는 첫 음반으로, 스피카 출신 김보형과 하이틴, 〈프로듀스101〉 시즌2 출신 김용진, 정동수(Arkay) 등이 참여했다. 타이틀곡 ‘Moonlight’의 경우, 글쎄. 멜로디라인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멜로디가 꽤나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 인공지능인 탓에 보편적인 인간의 음역대까지는 고려하지 못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반쯤은 농담이다). 사운드도 왠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와중에 그나마 김보형이 걸출한 보컬로 곡을 ‘캐리’하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하이틴과 김용진이 호흡을 맞춘 ‘Digital Love’는 상대적으로 꽤 듣기 편한데, 두근거리는 사랑을 표현한 상큼한 사운드에 하이틴의 풋풋한 보컬과 김용진의 경쾌한 랩이 상당히 좋은 합을 보이고 있다. 손아름과 정동수가 가창 뿐만 아니라 작편곡에도 참여한 ‘Our Voice’는, 단조로운 멜로디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는 기분이 든다. 흥미로운 기획이긴 한데,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드는 EP. ‘음악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기획의도에는 어느 정도 부합하는 듯도 싶지만.
샤샤 <You&Me forever Shasha>
메이저 엔터테인먼트
2018년 2월 27일
멤버들의 가창력도, 악곡 자체도 거슬림 없이 준수하다. 콘셉트도 크게 튀지 않고 무난하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무난하다는 것이다. 크게 모난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데, 굉장히 무색 무취 무미한 그런 느낌. 어디선가 많이 본, 봤어도 너무 많이 본,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안일하기 짝이 없는 프로덕션으로는,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야 할 신인에게 어떠한 힘도 줄 수 없음을 모를 리도 없는데 말이다. 답답해서 크레딧을 살펴보니 맙소사, 신사동호랭이였다. 이런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양산형 걸그룹 팝’은 이제 슬슬 그만두실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시그니처 사운드와 자기복제는 엄연히 다르다.
전소연 <아이들 쏭>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8년 2월 28일
마치 칭얼대듯, 어리광부리듯, 시쳇말로 ‘찡찡거리는’ 듯한 보이스톤이 권태기를 성토하는 가사와 퍽 잘 어울린다. 징징대는 톤이지만 크게 듣기 거슬린다는 인상은 없고, 제목처럼 관성적이고 지루한 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끌고 가면서도 그 안에서 ‘표정’이 쉴 새 없이 바뀌는 덕에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곡의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시종일관 능수능란하게 화자를 연기해 나가는 전소연의 곡 장악력은 분명 발군이다. 단지, 전소연이라는 아티스트가 발산하는 특유의 에너지를 좋아하는 리스너로서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음을 기대해본다.
솔로로서는 첫 행보인데, 따스한 날 꼭 맞는 새 옷을 입고 잔뜩 부풀어 외출에 나서는 모습이 눈에 선연히 그려지는 듯하다. 피아노로만 시작하다가 갖가지 어쿠스틱 악기가 화음을 넣듯 화사하게 풍성해지는 사운드도 매력적이고, 설렘과 두근거림을 노래하지만 과하지 않을 정도로 나풀대는 효정의 가창이 돋보인다. 본체인 오마이걸에서의 활동 및 이미지와 효정이라는 솔로 가수의 캐퍼시티 사이의 교집합을 절묘하게 잘 짚어낸 듯 보이는데, “사랑꾼 다 된 것 같아 / 아직 고백 못했는데”라는 고민 섞인 한숨마저도 달콤하고 즐겁다는 듯한 모습에 작은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준수한 솔로 데뷔작.
류세라 <Stay Real>Discovery!
Octo
2018년 3월 2일
무려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해 배송까지 스스로 했던 첫 미니 앨범과, 2016년에 발매한 OST 참여곡을 제외하면 사실상 첫 정식 솔로 음원이다. 편곡을 제외한 작사, 작곡을 모두 스스로 했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홀로서기를 갓 시작한 아티스트들이 종종 빠지곤 하는 패착이 보이지 않아 일단은 안심이 된다. 소박하게까지 느껴지는 미니멀한 사운드 속에서 읊조리듯 노래하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편안하게 들리고, 직접 작사를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 진심을 다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사에서처럼, 그의 느릿한 걸음 곁에서 느긋한 밤 산책을 청하고 싶어진다. 그 발걸음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는 의미에서 아낌없이 Discovery!를.
워너원 <약속해요 (I.P.U.)>
Stone Music Entertainment, YMC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5일
트랙 자체는 분명 나쁘지 않다. 큰 흠결 없이 무난하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이 ‘나쁘지 않음’이 전작과의 상대성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워너원이라는 네임밸류를 고려했을 때 그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긍정적인 평가라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룹인지를. 일단은 선공개 곡이라고 하니 본격적인 결과물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또 한 번 프로덕션의 무능과 게으름을 증명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마마무 <Yellow Flower>
RBW
2018년 3월 7일
앨범 전체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무드가 ‘배드애스(badass)’ 풍의 캐릭터와 꽤 잘 어울린다. 마냥 뜨겁고 열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인 라틴풍을 이렇게 서늘하고도 에너제틱하게 소화한 사례가 있었나 싶다. 허무한 정서를 특유의 그루브로 이끌어가는 화사의 솔로곡 ‘덤덤해지네’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매력적인 ‘Rude Boy’를 놓치지 말기를. 마마무가 여름에 피울 꽃은 어떤 향기일지 궁금해진다.
소정 <Stay Here>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8일
단 두 곡이지만, 소정이라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해낼 수 있는지 증명하는 듯한 솔로 데뷔 싱글. ‘Crystal Clear’에서 서늘하게 휘몰아치다가, ‘Stay Here’에서는 따스하게 내려앉으며 겨울과 봄이라는 대조적인 두 계절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타이틀 ‘Stay Here’를 듣고 있자면 켈틱 우먼(Celtic Woman) 같은 류의 음악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신성하고 신비로운 느낌이라든가 일종의 경외감 같은 것이 닮아 있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소정 특유의, 까슬한 목소리 결과 풍성한 울림 끝에 묘한 허무감이 깃드는 음색이 오래도록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더 많은 곡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 흠 아닌 흠이라 하겠다.
정일훈 <Big Wave> Discovery!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8일
힙합인 줄 알았는데 록이었다. 그러고 보니 타이틀곡 제목마저 ‘She’s gone’이다. 개러지 록의 무드를 떠올리게 하는 기타 리프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후렴구에서 때려 부술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 비트 사이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유롭게 누비는 정일훈의 목소리는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앨범 전체를 타고 흐르는 것은, ‘나 이제 이 정도쯤은 그냥 할 줄 아는데?’라는 듯한 자신만만함과 패기. ‘자뻑’과 ‘스왜그’의 미묘한 경계선에 놓인 그 자신감이 싫지 않고, 이내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모든 수록곡이 꽤나 잘 빠져 있고, 두 피처링 멤버도 각자 제 몫을 충실히 해내며 곡은 물론 주인공 아티스트와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인다. 특히 임현식이라는 보컬의 재발견을 위해서라도 첫 트랙 ‘얘기 좀 해요’는 놓치지 않길 권한다. 듣기 즐거웠던 만큼 트랙 수가 적은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질 정도. 왠지 이것이 정일훈의 최대치는 아닌 것 같아, 자연스레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그야말로 예기치 못했던 발견이라는 뜻으로, 그리고 빨리 다음을 보고 싶다는 약간의 칭얼댐을 담아서 Discovery!를.
전 아직도 이 곡을 길거리에서 듣는 게 겁이 나요. 저도 모르게 길 걷다 해드뱅잉할 것 같아서. (...) 마룬파이브의 'This Love'가 떠오르기도 하는 류의 얼터너티브-개러지-힙합인플루언스드-록인데(굳이 장르에 이름을 붙이자면), 코러스에서 악기들이 마구 때려 부숴대며 쏟아지는데 아 락키드의 피가 끓어버려! '얘기 좀 해요'는 듣기 편해서 아직도 자주 듣는 트랙이에요. 특히 임현식이 이런 류의 청량하고 가벼운 창법도 잘 소화하는 보컬이라는 걸 알게 되고 많이 놀랐던. Discovery!에 Pick!까지 줬어야 했을 거 같고, 조금 뒤늦게 후회 중인. 그래서 정일훈 정규는 언제 나오죠....?
장재인, 수호 <Listen 020 실례해도 될까요>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9일
두 아티스트가 각자의 스테이션을 통해 싱글을 함께 발매한다는 기획이 흥미롭다. 거기에 스토리성을 가미하여 곡과 뮤직비디오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는데, 기획사 간 컬래버레이션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예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와 보컬 두 명이라는 구성이지만 단출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고, 뻔하게 흘러갈 듯하다가 식상함을 절묘하게 비껴가는 멜로디 위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좋은 합을 보인다. 첫 만남의 설렘이라는 다소 뻔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표현 방식이 과하지 않아 듣기 편하다는 인상. 듣기 전까지는, ‘장재인과 수호라고?’ 라며 물음표 섞인 반응을 보이다가도, 곡이 끝나갈 즈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수지 <잘자 내 몫까지 (With 이루마)>
JYP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9일
능수능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피아노와 단둘이서만 곡을 오롯이 채우는 수지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숨소리마저 불면으로 가득한 밤의 한숨인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담담함 속에 작은 아픔을 품은 목소리가 왠지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잠이 안 와서 네 꿈도 못 꾸는’ 밤이 되면 이 노래를 베개 삼아 오지 않는 잠을 청하게 될 것 같다.
수호, 장재인 <Dinner> (SM STATION)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10일
스테이션의 존재 의의와 방향에 대한 답이 이것이라면,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왜 LISTEN이어야 하는지, 왜 SM 스테이션이어야 하는지, 왜 둘의 컬래버레이션이어야 하는지 제법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불과 하루를 앞두고 발매한 ‘실례해도 될까요’와는 사뭇 다른 서늘한 공기 속에서, 이미 식을 대로 식어버린 감정을 공허하게 풀어놓는 둘의 목소리는 싸늘하기까지 하다. 전작에서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던 장재인의 까슬한 목소리도 한결 잘 어우러지는 듯하고, 특유의 깨끗한 음색을 이번에는 공허함과 서늘함으로 승화시키는 수호의 곡 수행력도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의 시작이나 ‘가장 좋은 시간’을 노래한 적은 많았어도, 그 끝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풀어낸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권태에 대한 흔한 투정이나 성토가 아니라, 일말의 기대마저 모두 사라진 씁쓸함과 위태한 관계에 대한 접근법이 꽤나 신선하다. 두 뮤직비디오를 연이어서 감상하길 강력히 권한다.
듣자마자 코지마 마유미가 생각났다고 하면 과언일까. 소위 ‘외국 느낌’이 물씬한 보사노바 사운드에 얹어지는 가냘픈 보컬의 오묘한 조화가 한때 ‘시부야계’로 통칭되곤 하던 일본발 재즈풍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새벽 두 시’라는 가사 속 시간적 배경에 딱 걸맞은 미니멀한 악기 구성과, 칭얼거림과 한숨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혜이니의 보컬이 의외로 좋은 합을 보인다. 특유의 가느다란 목소리 끝에, 비브라토 섞인 숨소리가 한숨처럼 퍼져 나가는 느낌도,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의 쓸쓸함과 잘 어울린다는 인상. 이 근사한 보사노바 팝을 대체 누가 작곡했나 궁금해서 찾아보곤, 혜이니의 자작곡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다음에 또 놀라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Discovery! 선사.
갓세븐 <Eyes On You>Pick!
JYP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12일
갓세븐이라는 그룹 전체의 수행력은 물론, JB(Def soul)의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 능력이 어떠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JB가 작사를 담당한 선공개곡 ‘너 하나만’의, 헌신적일 정도로 마음을 표현하는 남성 화자와, 그를 ‘음, 그럼 너로 정해볼까’라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하는 여성 화자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가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듣고 있으면 기승전결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는데, ‘너 하나만’으로 가볍게 예열한 뒤 ‘Look’에서는 적재적소에서 청량감 있게 터지는 사운드로 분위기를 한껏 달구었다가, 이어지는 수록곡으로 찬찬히 쿨다운하고는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구조가 그러하다. 마치 둘이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길거리를 경쾌하게 걷다가 어딘가에 들어가 신나게 춤추며 논 뒤, 고요한 새벽을 보내고는 함께 일출을 맞이하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서늘하고 촉촉한 공기를 품은 뱀뱀의 ‘The Reason’, 아련하고 풋풋한 영재(Ars)의 ‘망설이다’, 나른한 리듬이 인상적인 유겸의 ‘우리’ 등 멤버들의 자작곡은 크게 강렬하진 않아도 묵묵히 앨범을 받쳐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잘 만든 R&B 발라드지만, 어떤 종류로든 팬이거나 팬이었던 적이 있는 사람은 가슴이 절로 뭉클해질 진영의 자작곡 ‘고마워’는 앨범의 마무리로 손색이 없다. 특히 ‘Look’은 귀로만 들어도 즐겁지만 퍼포먼스로 보면 두 배 세 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므로, 뮤직비디오나 퍼포먼스 영상을 한 번쯤 꼭 감상해 보길. 어른이 된 ‘캘리포니아 소년들’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하며 Pick!을 보낸다.
사실 이 앨범 전까지는 갓세븐 '최애곡' 부동의 1위가 (리뷰에 '캘리포니아 소년들'이라는 말이 등장했던 바로 그) 'A'였어요. 이 앨범이 나오고는 그 1위 자리가 위태로워졌습니다. (ㅋㅋㅋㅋ) 뭐든 시키면 곧잘 해내는 갓세븐이었지만, '그래서 뭐하는 그룹이야?'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그룹의 색깔이 희미했던 게 사실이었죠. 이제는 그 질문에 이 뮤직비디오를 슥 보여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 길 돌아온 만큼 확신을 가지고 기분 좋게 뻗어나가는 트랙들로 가득한 명반이에요. 그렇게 '캘리포니아 소년들'은 어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앞으로를 누구보다도 응원하고 싶어요. 사랑아 진영해!
에이프릴 <The Blue>
DSP 미디어
2018년 3월 12일
슬슬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내지는 고민 같은 것이 느껴지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노선을 고려하여 무리수를 두지 않는 범위에서 안전하게 가는 방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전작 ‘봄의 나라 이야기’와 ‘손을 잡아줘’에서 ‘처연한 표정의 소녀’를 연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씩씩함이 조금 더 비중이 큰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화사한 비애’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그 방향성 전환이 효과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물음표가 남는다. 안전한 것도 좋지만 때로는 과감한 시도로 돌파구를 찾을 필요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파격적인 콘셉트를 취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이래서야 치고 올라갈 여지조차 없지 않은가 말이다.
주로 무대 공연과 커버댄스로 활동해온 걸그룹 시오시작의 첫 디지털 싱글. 첫 음원답게 무척이나 기세 좋은 전자음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빵야빵야빵야빵야빵야” 라는 추임새를 그것도 참 쓸데없을 정도로 남발하는 느낌에 실례인 줄 알면서 헛웃음이 터져버렸다. 사운드 자체는 크게 나쁠 것이 없는데, 그것을 수행하는 멤버들이 무리해서 ‘쎈 척’하는 듯한 느낌인 데다 영 조잡하기 짝이 없는 랩이 그나마 있던 퀄리티도 깎아 먹고 말았다. 플로우도 엉망이거니와, 기본적인 박자도 맞추지 못해서야 없느니만 못하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무리해서 입은 것 같아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소유 <My Blossom>
스페이스오디티
2018년 3월 12일
제목부터 가사, 멜로디, 보컬, 편곡까지 모든 것이 ‘봄 시즌송’의 공식을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다. 찰랑이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 포근하게 얹어지는 보컬, 느긋한 걸음에 맞춘 듯한 템포까지 그야말로 벚꽃 시즌송의 모범 답안이라 할 만하다. 벚꽃이 만개한 길거리에서 ‘너의 하루를 책임질 테니 빨리 나오라’는 소유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확인해보니 벚꽃 피크닉 페스티벌의 공식 테마송이라고 해서 순간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납득되었다. 의도한 그대로 거슬리는 느낌 없이 매끄러운 만듦새를 자랑하긴 하지만 두고두고 들을 시즌송이 될지는, 글쎄.
더 이스트라이트 <Don't Stop (DJ Koo Remix)>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13일
크레딧을 굳이 확인하는 수고 없이도 누가 작업했는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대단한 능력이라는 생각은 든다. 전작 ‘레알 남자’에 수록된 ‘Don’t Stop’을 구준엽이 리믹스했는데, 꼭 이래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 끝에 그만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까까까까까만 선글래스”로 대표되는 빌드업을 지나치게 남발했다는 것은 둘째 치고, 이미 그 자체로 꽤 준수한 록 넘버인 원곡을 공연히 망쳐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던 음식에 갑자기 쓸데없는 조미료를 왕창 부어버린 것 같은 느낌. 이 리믹스, 꼭 해야만 했던 걸까.
정인, 예지 <SR Project Vol. 5> '날 사랑해요'
SR Media
2018년 3월 13일
정인의 걸출한 가창력도, 예지의 뛰어난 래핑도 곡에 심폐소생술을 가하지 못했다. 도리어 두 아티스트의 능력치마저 깎아 먹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다. 둘에게 실례일 정도로 곡의 퀄리티가 처참하기 짝이 없다. 음반 소개에 따르면 ‘강한 이미지의 래핑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유니크한 예지의 보컬과 래핑이 돋보이는 곡’이라고 되어있는데, 곡 이미지에 최대한 맞추려고 한 의도는 알겠으나 전혀 돋보이지도 않고 어우러지지도 않는다. 거기에 뜬금없이 남성의 내레이션이 더해지는 순간,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예지라는 래퍼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이렇게 쓸 거면 차라리 쓰지 말라고 하고 싶다.
정말 초절정 TMI인데요, 제가 저 두 싱글을 듣고 있을 때 마침 최애 카레집에서 카레를 먹고 있었거든요. 참고로 저는 카레로 하루 세 끼 거뜬히 먹는 알아주는 '카레 팡인'이고, 오랜 유목민 생활을 종결지어준 최애 맛집이었는데.... 먹다가 숟가락 내려놓고 이마 짚었습니다. 그 정도로 화가 났어요. 저 예지 정말 좋아하는데, 이렇게 쓸 거야 정말....? 피에스타도 갔는데 이럴 거야....? 아 잠시만요 저 눈가에 땀 좀....
호야 <Angel>
Glorious
2018년 3월 14일
노래부터 퍼포먼스까지, 그야말로 솔로로서의 호야가 가장 잘 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끈적한 무드의 슬로우잼에 야살스러운 노랫말을 흘리듯 가볍게 노래하고 있는데, 춤이 최대의 무기인 그답게 퍼포먼스를 함께 봐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느낌이 있다. 엠넷 〈Hit the Stage〉에서 다수의 뛰어난 무대를 남겼지만 특히 느릿한 리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을 확장해 다양한 각도로 판을 연출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나올 본작에 기대를 걸게 된다. ‘래퍼 호야’만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하게 될 한 방.
NCT <NCT 2018 Empathy>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14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 박스의 초콜릿 상자와도 같은 앨범. 왕도 중의 왕도 밀크 초콜릿, 쌉쌀하고 묵직한 다크 초콜릿, 달콤하다 못해 혀가 녹을 것 같은 화이트 초콜릿까지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뮤직비디오로 선공개된 신곡(‘Boss’, ‘Baby Don’t Stop’, ‘Go’, ‘Touch’)과 이미 싱글컷 되었던 곡(‘일곱 번째 감각’, ‘Without You’, ‘몽중몽’, ‘텐데…’, 그리고 무대로는 공개되었으나 음원화는 처음인 곡(‘Black on Black’)에 이번 앨범으로 처음 공개하는 곡(‘Yestoday’)까지 총망라했는데, 다소 들쭉날쭉하게 느껴지는 트랙 배치가 문제인지 풀렝스 앨범이라기보다는 싱글 컬렉션에 가깝게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곡 각각의 퀄리티는 물론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라 그 아쉬움이 더더욱 크다. 그럼에도 다양한 조합과 다채로운 장르를 통해 NCT라는 그룹의 어떠한 비전과 ‘곤조’ 같은 것이 느껴지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것을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나, 효과적인 트랙 배치로 풀어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은 여전히 남지만서도. 섹슈얼한 텐션의 보컬/랩과 퍼포먼스가 매력적인 NCT U의 ‘Baby Don’t Stop’, SMP의 ‘2018년 틴에이저식 번역판’이라 할 수 있는 NCT 드림의 ‘Go’를 추천하며, 특히 ‘Baby Don’t Stop’은 뮤직비디오나 연습 영상으로 퍼포먼스를 함께 감상하길 강력히 권한다.
김보형 <Flash Me>Discovery!
에이비플래닛
2018년 3월 15일
스피카의 ‘Secret Time’에서 보이던, 김보형의 ‘외국스러움’과 ‘여자 으른’적 모먼트를 잊지 못했기에 이 싱글이 유독 반가웠다. 특이하게도 가사가 전부 영어인데, 김보형 특유의 고혹적인 음색과 차진 발음,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곡 수행력이 위화감 없이 곡에 녹아 들어있다. 외국의 어느 근사한 라운지바에 틀어 놔도 이질감을 못 느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K함’을 한없이 지워낸 치밀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자랑하는데, 김보형이 작곡에 편곡까지 참여했다고 하니 앞으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EP나 풀렝스 앨범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Discovery!를.
업텐션 <Invitation>
티오피 미디어
2018년 3월 15일
인트로 ‘Invitation’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예감하다가, 타이틀 ‘Candyland’에서 느낌표가 열 개쯤 떠오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없어”라며 기세 좋게 터뜨리는 도입부처럼, 정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Candyland’에서는 밀고 당기는 드럼과 베이스 위에서 축포처럼 펑펑 터지는 브라스 사운드가 은근히 흥을 돋우고, 야실한 질감의 보컬과 타이트한 래핑이 모두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90년대 음악을 변주 내지는 번역한 곡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이니, ‘곤조’를 넘어 일종의 집착(?)처럼 보이기까지 해서 어쩐지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한국의 1세대 아이돌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미국의 백스트릿보이즈나 엔싱크 등을 레퍼런스 삼은 듯한 모양새. 요즘 음반 시장에서 보기 드문, 11곡을 꽉꽉 채운 풀렝스 앨범이라는 점도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반해, 안 반해’와 ‘Superstar’, ‘Love sick’을 추천한다.
젤리걸 <젤리처럼>
슈퍼비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20일
‘동요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무리하지 않는 음역대, 흥겨움을 더하는 떼창, 마치 게임 음악처럼 통통 튀는 사운드, 밝고 착한 에너지로 가득한 가사,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이 함께 느껴지는 풋풋한 보컬. 모든 요소가 딱 ‘키즈돌’에 맞는 눈높이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뮤직비디오는 없는 것 같아서 대신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확인했는데, 가끔 동작이 안 맞거나 틀리는 듯한 장면이 있었으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을 어필하는 부분이 없어 편한 마음으로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볼 수 있었다. 키즈 걸그룹이라는 보도자료와, 다소 조악한 만듦새의 커버아트에 깜박 속아 지나칠 뻔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을 정도. 젤리걸의 건강한(!) 활동과 성장을 응원한다.
솔직히 저는 소위 '키즈돌'에 큰 편견이 있었어요. 실력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이들이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척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게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고. 이게 바로 '꼰대'인가....? 그런데 그런 편견을 보기 좋게 깨준 곡이에요. 동요와 팝의 장점을 한데 섞어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면 딱 이런 곡이 될 것 같은. 링크한 영상을 보면 동작을 틀리는 장면도 있는데, 그런 점마저 순수하고 귀여워서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지금 2기 멤버들이 공개된 것을 보니 아마 기수제 활동인 모양인데, 건강하게(!) 활동하며 성장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븐틴 특유의 재기발랄한 에너지가 그리웠다면 특히 반가울 싱글. 각 멤버의 보컬 연기력은 물론, 무대 위에서의 뮤지컬적 연기력이 돋보인다. 팬덤 내에서 ‘꿀예능 라인’으로 익히 알려진 조합명을 그대로 그룹명으로 썼는데, 팬덤 내 용어 같은 것들이 아예 공식 결과물로 편입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예능 담당 멤버들다운 발랄함과 ‘드립력’(음악방송에서 매회 대사를 바꾸는 성의를 잊지 않는다!)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도, 도겸과 승관이라는 걸출한 보컬의 가창력이 묻히지 않는 점이 달갑다. 자칫 ‘쌈마이 감성’으로 흐를 수 있었던 부분을 적절히 정리하고, 어김없이 훵키한 기타 리프를 넣어 흥겨움을 더했다. 부석순의 거침없는 앞으로를 기대한다.
세븐틴은 꾸준히 좋은 곡으로 탄탄하게 디스코그래피를 다져온 그룹이고 결과물이 거의 항상 좋았지만, 사실 초창기의 재기발랄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했어요.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고마운 활동이었던 것 같고요. 별로 길지 않으니 두 번째 링크된 영상을 꼭 봐주십사. 전 이 친구들이 좋은 의미로 미쳐있는(ㅋㅋㅋㅋ) 게 너무 좋아요ㅋㅋㅋㅋ
허니팝콘 <Bibidi Babidi Boo>
Kyun Create
2018년 3월 21일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그룹 특성상 어떠한 핸디캡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추구하는 이상과 실제로 처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결국 남는 것은 엉성한 결과물뿐이다. 메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적절한 절충안이라도 택해야 했다. 멤버 전원이 외국인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발음 문제가 곡 수행력이나 아주 기본적인 전달력까지 방해해서야 있던 퀄리티도 깎아먹고 마는 형국이다. 한국인도 발음하기 녹록치 않은 문장으로 된 가사보다, 좀 더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랫말을 마련할 수는 없었던 걸까. 비음 섞인 창법 역시 멜로디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가사 전달을 심히 저해한다.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결국 그저 그런 어설픈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몬스타엑스 <The Connect : Dejavu> Pick!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26일
‘Jealousy’는 ‘몬스타엑스가 가장 잘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 이 씬에서 몬스타엑스 말고는 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날 선 질투심을 나른한 섹시함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팀을 적어도 현존하는 보이그룹 중에서 떠올리기 쉽지 않으니 말이다. 전작부터 이어지는 탄탄한 안정감이 앨범 전체에서 느껴지는데, 전반적으로 수록곡의 퀄리티가 고른 것은 물론 멤버들의 비중 역시 고르게 분배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타이틀 ‘Jealousy’는 곡 자체도 매우 매력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던 멤버의 재발견도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래퍼 아이엠이 그러했다. 수록곡에서는 아예 한 버스가 통째로 영어임에도 발음이 뭉개지긴커녕 타이트하고 정확한 딜리버리(가사지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와 절제된 박력의 좋은 톤을 자랑하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인재를 놓치고 있었나 싶어서 역대 활동곡을 복기했을 정도. “나나나나나, 다 쏟아봐봐”라는 가사처럼 그야말로 미친 듯이 쏟아붓고 내달리는 마성의 트랙 ‘폭우’를 꼭, 제발, 절대로, 놓치지 않길 간곡히 권한다. 외에도 비장하고 처연하게 내달리는 ‘Destroyer’, 산뜻하고 따스한 ‘If Only’, 서늘하고 축축한 무드의 ‘미쳤으니까’, ‘Lost in the Dream’ 등 준수한 수록곡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지금껏 몬스타엑스를 놓치고 있었다고 해도 이 한 장은 절대 놓치지 않길.
아이엠의 랩을 듣고 정말 너무 놀랐어요. 이렇게 걸출한 실력자를 내가 여태 몰랐을 리가? 왜 몰랐지? 하면서 부랴부랴 과거 활동곡 전부 쭉 들어봤는데 도통 이유를 모르겠고. 수록곡에 영어 가사가 많은데, 발음도 발음이고 정말 너무 잘해서 깜짝. 누가 영업해줘서 'Blue Moon'이랑 '인터스텔라'를 듣고.... 제 인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임창균 엉엉....
마지막으로, 폭우 들어주세요. 두 번 말합니다. 폭우 들어주세요. 정말 너무너무 미친 트랙이고.... 저는 폭우 팡인이 되었고.... 내일 모레 (나오지 않을 리 없는) 폭우 첫 무대를 두 눈으로 목격할 예정이고.... 넌 참 무미건조해! 이거 사랑 맞니, 퀘스쳔!
신화 <All Your Dreams>
신화 컴퍼니
2018년 3월 26일
그야말로 신화라서 가능한, 신화가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기획. ‘데뷔 20주년’ 기념 디지털싱글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이 싱글의 진가는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비로소 드러난다. 그 어떤 보이그룹이 20여 년 전 촬영한 본인들의 뮤직비디오를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정성 들여 셀프 패러디해서 선보이겠는가. 신화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요소는 한 곳에 존재하지 못하고, ‘신화이기 때문에’ 그 당위를 가진다. 고로 이 싱글은 충분히 그 몫과 역할을 다 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경리, 최낙타 <4Love 2nd>
스타제국
2018년 3월 27일
누가 봐도 봄을 한껏 노리고 나온 시즌송이지만, 그 노림수에 기꺼이 몇 번이라도 속아주고 싶을 정도로 꽤나 잘 만들어져 있다. 뻔하게 흘러갈 듯하다가도 절묘하게 식상함을 비껴가는 사운드 위에서 경리의 보컬이 반짝반짝 빛나고, 최낙타의 포근한 음색도 잘 어우러져 봄이구나, 실감케 한다. 무엇보다 경리가 보컬로서 참 좋은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정말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동방신기 <New Chapter #1 : The Chance of Love>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3월 28일
타이틀 ‘운명’은 ‘Something’과 비슷하게 스윙재즈라는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한껏 화려하게 으스대던 그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미니멀한 모양새를 취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간에서 말하는 ‘개츠비적 리치함’의 무드를 계속 가져오면서도, 묘하게 ‘뽕끼’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고개를 갸웃하다가 은근히 돋아지는 흥에 이내 ‘아무렴 어때’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미니멀하고 산뜻한 '평행선', 푸근한 온기가 느껴지는 '다 지나간다...', 15년 차 아티스트로서의 카리스마와 장악력을 느낄 수 있는 ‘Bounce’,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각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퍼즐'과 ‘Closer' 등 좋은 트랙으로 리스트를 풍성하게 채운, 말 그대로 ‘풀렝스’ 앨범 그 자체라 하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은 두 멤버의 연륜(이렇게만 말하면 매우 납작한 느낌이 들지만, 어쨌든)과 여유, 그리고 축적된 뛰어난 수행력 덕이리라. 동방신기의 새로운 챕터, 그다음 페이지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드는 생각은, 사무엘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혀 놨다는 것뿐이다. 사이즈도 스타일도 전혀 맞지 않는 옷에 완전히 묻혀버린 꼴이다. 겨우 열일곱의 소년에게 ‘아빠 양복’을 입힌 것 같은 모양새랄까. 노래도 아티스트도 잘못한 것은 없다. 그저 둘이 앙숙처럼 어울리지 않을 뿐. 덤으로 수록곡이 죄다 밋밋해서 아무런 매력을 느낄 수 없는데, 와중에 사무엘의 수행력은 출중해서 더 안타깝다. ‘Sixteen’의 산뜻함과 풋풋함이 그리워질 지경. 제발 부탁하건대, 어울리지 않는 콘셉트에 젊고 재능 많은 아티스트를 억지로 우겨 넣는 패착은 그만 저지르길. 어울리는 옷을 입혀 주길 바라는 것이 그렇게나 큰 욕심이란 말인가. 그토록 많던 재능과 매력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사무엘이 무슨 죄라고.
호야 <Shower>
Glorious
2018년 3월 28일
단점이나 보완해야 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플랫하고 단조로운 보컬이나, 일관적이고 유기적이기는 하지만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앨범 구성은 아쉬운 부분. 단지, 이러한 부분을 훨씬 더 뛰어난 장점을 통해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면모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오디오로는 충족되지 않는 부분을 비디오적 연출을 통해 채워 넣는 것을 보면 다음 앨범에서는 얼마나 더 좋아질지 자연스레 기대를 품게 된다. 선공개 싱글 ‘Angel’에서 그랬듯,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되도록 뮤직비디오를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자신을 한없이 기다려준 팬들을 향한 애틋함이 담백하고 진솔하게 묻어나는 수록곡 ‘점’ 역시 체크해 보길.
트리탑스 <미세먼지 나쁨이라는데 벚꽃이라니 독한것들아>
VL-ent
2018년 3월 28일
제목부터 명백히 ‘어그로’구나, 직감했다. 속는 셈 치고 들어볼까 말까. 속아주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조금은 의외의 잔잔한 밴드 사운드가 반겨온다. 벚꽃잎 흩날리는 봄바람 속에서 한껏 외로워하며 커플들에게 애먼 심술을 부리다가도, ‘이래서 내가 여친이 없나’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화자의 모습에 약간의 실소와 함께 연민 비슷한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10cm의 ‘봄이 좋냐??’와 같은,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와 비슷한 결의 ‘루저 감성’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밴드 사운드나 보컬의 가창력 같은 음악적 요소가 뒤떨어지는 느낌은 없어 꽤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과감히 다음 트랙으로 옮겨갔다. 미안하지만, 두 번은 속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달의 소녀 <Olivia Hye> Discovery!
BlockBerry Creative
2018년 3월 30일
서늘하고 차가운 곡조, 나른하고 몽롱하며 약간은 ‘섹시’한 무드, 호러 스릴러 장르에 가까운 뮤직비디오 등의 요소가 퍼즐처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별의 아픔을 ‘나를 더 사랑하겠다’는 자기애로 승화시킨 가사가 눈에 띄는데, 이런 메시지까지 곡과 프로덕션의 요소들과 촘촘히 맞물리는 절묘함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모든 소녀들이 공개되었고, 대장정의 프로젝트가 일단 마무리 되었다(유닛 활동이 하나 남아있긴 하지만, 멤버 공개는 완료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달의 소녀’가 향하게 될 다음은 어떨까. 아직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비오는 날이면 왠지 꼭 찾게 되는 곡. 곡이 가진 서늘하고 축축한 무드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더불어 최근에 저의 '자존감 높여주는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이 추가한 곡이기도 해요. 저는 정말이지 디지페디의 '변태력'이 진심으로 좋아요. 어떻게 거기다가 두 명의 올리비아 혜가 서로 끌어안는 장면을 넣지....? 진짜 이 귀신같은 분 같으니.... 너무 좋다는 말입니다.
김보형 <Because Of You>
Kimbohyung
2018년 3월 30일
지난 싱글에 이어 이번에도 작사 작곡과 가창까지 스스로 해냈는데, 한껏 이국의 것에 가깝던 전작과는 달리 조금은 티피컬한 느낌의 R&B 발라드를 장르로 취하고 있다. 피아노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주고받듯 노래하다 반주가 들어오는 부분 같은 것들이 다분히 클리셰적인데, 자신의 이름을 건 1인 기획사에서 처음 내놓는 결과물인 데다 자신의 생일에 발매하는 싱글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는 의도한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뛰어난 가창력으로 곡을 장악하고 있기에 큰 단점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김보형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가능성은 이게 결코 끝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